강화도의 성공회
The Anglican Ganghwa-do
강화도 갑곶이 나루터의 성니콜라회당. (1893)
강화도의 성공회는 1893년 7월 25일 영국인 워너 선교사가 갑곶나루에 성니콜라회당을 세워 첫발을 내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강화도는 조선을 침략해오던 외세의 통로로 이를 막기 위한 요새였기에 외국인 출입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왕실의 요청으로 영국인 군사기술고문관 두 사람이 조선인 해군사관을 양성하고자 조선 최초의 서양식 해군사관학교를 세웠는데 이 군사학교의 폐쇄 이후, 영국인 교관들이 살던 강화읍 관청리 소재의 관사와 부지를 1896년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이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강화 전역으로 선교활동을 넓혀 나갔습니다. 특히 강화도는 조선의 다른 지역과 달리 구교와 신교 모두 직접 선교활동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교파와의 선교경쟁을 피할 수 있는 성공회 선교의 최적지로 여겼습니다.
성공회 선교는 토착화 정신에 입각하여 이루어졌습니다. 복음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서구 문화의 일방적인 이식을 경계하며, 선교지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고 지역 주민뿐 아니라 그 지역의 아픔과 문제를 사목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지역에 뿌리내리는 교회가 되고자 했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강화읍교회, 온수리교회, 선수교회 그리고 그외 지역으로 청주교회, 진천교회 등 한옥으로 되어 있는 여러 성당들이 성공회의 토착화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화도에서 성공회는 특별합니다. 강화도에 기독교의 첫발을 딛은 것이 성공회였고, 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강화도 주민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삶 속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강화도 근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성공회를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현재 강화도에는 12개 성공회 교회가 있습니다. 대한성공회 한국관구>서울교구>강화교무구로 분류되어 활발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많은 사회복지단체를 운영하여 지역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